책장 넘기는 소리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나침반테스 2007. 1. 4. 23:06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든, 어떤 장소이든, 부엌이기만 하면,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하면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 기능을 잘 살려 오랜 세월 손때가 묻도록 사용한 부엌이라면 더욱 좋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깨끗한 행주가 몇 장 걸려 있고 하얀 타일이 반짝반짝 빛난다.

 

                                                      < 키친 1의 시작부분 >

 

 

 

 

 

 

***  요리사 지망생이자 대학생인 "나 - 사쿠라이 미카게.

일찍 어린 나이에 부모를 다 잃고 중학교시절에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와 둘이 살았다. 소설의 시작부분에 할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피붙이라곤 없는 고독한 나.

 

다나베 유이치가 찾아와 함께 살 것을 권한다.

유이치는 할머니가 생전에 자주 드나들어서 친하게 지내던 꽃집의 아르바이트생.

독특한 가족구성원을 이루며 살게 된다. 

엄마라는 에리코는 여장 남자다. 유이치의 엄마가 죽은 뒤

엄마의 애인인 에리코가 유이치를 거둬주며 키우게 된 것이다.

이런 세 사람의 구성원은 만족하며 사는 것이 키친 1의 내용이다.

 

 

슬퍼서가 아니라, 그저 여러가지 일들로 울고 싶어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들리는 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자, 머리 위로 보이는 밝은 창에서 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귀를 기울이자, 안에서 시끌벅적한 소리, 냄비 부딪치는 소리, 그릇들 소리가 들렸다.

--- 주방이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우울하고, 그러다 명랑한 기분이 되어 머리를 감싸고 잠시 웃었다.

 

                                                                < 키친 1의 50쪽에서 >

 

 

*** 키친 2에서 유이치의 엄마 에리코가 죽는다. 유이치도 미카게 같이 쓸쓸한 존재가 된다.

나는 요리연구가의 어시스턴트가 되어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는데 어느날 에리코의 죽음을

듣게 되고 선험자로서 유이치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서로 교감한다.

 

나는 요리 촬영차 3박4일 일정으로 여행을 가게 되고 도쿄에 미카게가 없다는 불안함을 느낀

유이치도 여행을 하게 된다.미카게와 유이치가 어느만큼 떨어진 도시에 머무는지 잘 나타나진 않지만

그리 만만한 거리는 아닌 걸로 표현되어 있다.

밤 중에 배가 고파서 사먹게 된 돈까스가 너무 맛있어서그 밤중에  미카게는 돈까스를 사서 택시를

대절하여 유이치를 찾아가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수많은 낮과 밤,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하였다.

언젠가 유이치가 말했다.

"왜 너랑 밥을 먹으면, 이렇게 맛있는 거지?"

나는 웃으며,

"식욕과 성욕이 동시에 충족되기 때문 아닐까?"

라고 말했다.

"아니야, 달라. 그게 아니야."

웃음을 터뜨리며 유이치가 말했다.

"아마 가족이기 때문일 거야."

 

             < 키친 2의 135쪽에서 >

 

 

** 일본소설은 선입견의 작용으로 잘 읽게 되지 않는다.

그래도 공부삼아 더러 읽었다.하루키도 읽었고 마루야마 겐지도 읽었고 히토미도 읽었다.

젊은 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의 톡톡 튀는 문장이 좋다.

특히 키친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초기 작품으로 신선미가 돋보이고 내용이 따뜻해서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