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부터 발밑에서 얼음이 서걱거리는 이 맘때쯤이면 늘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갱죽' 또는 '갱시기'라고 부르던,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그 무엇이다.
식은 밥과 남은 반찬, 묵은 김치를 썰어 솥에 대충 붓고 물을 넣어서 끓인 음식인데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거기다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저어 먹기도 했다.
반드시 식은 밥이라야 하고 도 반드시 푹 삭아서 신 김치, 남은 반찬이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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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갱죽일까. 갱은 제사에 올리는 '메와 갱(羹)'할 때의 그 갱인 것 같다.
메는 밥이고 갱은 무같은 야채와 고기를 넣고 오래 끓인 국이다.
죽은 말 그대로 죽인데 물이나 국에다 밥을 넣고 끓여서 만든 죽이다.
쌀알을 넣고 끓이는 죽과 달리 이건 한번 밥이 된 것을 다시 끓인다는 게 다르다.
갱죽의 다른 말인 '갱시기'는 '갱식'에서 나온 말이다.
성석제 산문집 < 소풍 >에서
*** 작가의 고향은 나의 고향과 지근거리에 있다.
사투리가 독특한 것이 그 쪽 사람들끼리는 어디에서건 말투로 금방 알아 먹는다.
"먼저 먹을래" 라는 말은 "머이 먹든가" 이렇게 된다.
또 " 빨리 가게 "는 "쎄기 가여"이렇게 된다.
어디서건 이런 사투리 들어본 적 있는지요? 들..
요즘 "황만근..." 이후로 나온 그의 책이 안 보이기에 "소풍" 을 읽고 있다.
주로 음식에 대한 얘기다, 가볍고 뜨끈하고 푸근해서 좋다.
거기에 나온 "갱시기"
전라도 사람에게 시집을 가서 보니 거기도 비슷한 음식이 있긴 한데
바닷가여서 그런지 훨씬 고급스런 음식이었다.
콩나물과 굴이 꼭 들어가는 "국밥" 이 갱시기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건 결코 내 추억 속의 갱시기와 전혀 같지 않다.
고향 사람들과 옛얘기할 때 들먹이는 갱시기는 아니다.
겨울에 먹는 갱시기 알아여? 음식도 음식 같잖은 기 뚜굽긴 왜 글키 뚜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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