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로맹가리. 도미니끄 보나

나침반테스 2006. 11. 15. 23:38

 

 

 

 

 

 

파리에 주룩주룩 비가 내리던 1980년 12월 2일 오후가 저물 무렵,

가리는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다.

사용된 권총은 특수 38구경,스미스&웨슨 리볼버, 넘버 7099983이다.

 

붉은 색 목욕가운을 씌운 베개를 머리에 대고 - 아마 상처를 숨기고,

분명 그를 발견할 레일라나 아들에게 피투성이 얼굴을 이내 들키지 않기 위해 -

붉은 색 내의를 입은 채 침대에 누워, 그는 오른손에 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그의 머리는 멀쩡했다. 두개골은 날아가지 않았다.

피도 거의 흘리지 않았다.

법의학자의 표현에 따르면, 가리는 '푸른 눈을 뜬 채 차분하고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법의학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 멋지고 인상적인 죽음이었습니다."

                                            도미니끄 보나 < 로맹가리 >에서

 

 

 

 

 

 

 

 

 

 

 

 

*** 로맹가리의 전기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었다. 

또 작품이 쓰여진 배경도 알고 싶었다. 마침 그의 전기가 나왔다.

로맹가리의 본명은 '로맹 카체브'이다. 러시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머니와 함께 일찌기 프랑스로 이주를 했다.

군인과 외교관 생활을 했다.

1956년 <하늘의 뿌리>로 콩쿠르 상을 받았다.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던 중 자신을 감추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고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글을 쓰게 된다.

그때 쓰여진 <자기 앞의 생>이 1975년에 다시 콩쿠르상을 받게 된다.

콩쿠르상은 한 작가에게 일생에 한 번만 수여되는 상이다.

나중에 에밀 아자르가 자신이라고 유서에 밝혔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1962년에 발표되었고

1968년엔 그 작품을 직접 감독하여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을 두 번째 아내인 진이 맡았지만 곧 이혼한다.

그 뒤 1979년 진의 실종, 죽음으로 발견되고 가리는 진이 죽은 뒤 1년만에 자살한다.

 

사람은 때로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어떤 한계를 느끼면 자신을 감추고 싶어지기도 한다.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작품활동 한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러나 아직 나로선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자살은 이해 밖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