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자기 앞의 生. 에밀 아자르

나침반테스 2006. 11. 8. 15:25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진열대 위의 토마토나 멜론 따위를 슬쩍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누군가의 눈에 띄도록 일부러 기다렸다.

주인이 나와서 따귀를 한 대 갈기면 나는 아우성을 치며 울었다.

그렇게 하므로써 나에게 관심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셈이었다.

 

한번은 식료품점 앞에서 진열대 위의 달걀을 하나 훔쳤다.

주인은 여자였는데 그녀가 나를 보았다.

나는 가게 주인이 여자인 곳에서 훔치기를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내 엄마도 틀림없이

여자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달걀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주인 여자가 나왔고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 끌 수 있도록

그녀가 내 뺨을 한 대 올려붙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녀는 내 곁에 쭈그리고 앉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이런 말까지 했다. "너, 참 귀엽게 생겼구나."

처음에 나는 그녀가 나를 잘 구슬려서 달걀을 도로 찾으려고 그러는 줄 알고 호주머니 깊숙히

든 달걀을 더 꼭 쥐었다.

그녀는 벌로 나를 한 대 갈겨주기만 하면 되었다.

 

실제로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서서 진열대로 가더니 달걀을 하나 더 집어서 내게 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뽀뽀를 해주었다. 한순간 나는 희망 비슷한 것을 맛보았다.

그때의 기분을 묘사하는 건 불가능하니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나는 그날 오전 내내 그 가게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며 서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따금 그 맘씨 좋은 주인여자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 주었다.

나는 손에 달걀을 쥔 채 거기에 서 있었다.

                                에밀 아자르 < 자기 앞의 生 > 에서

 

 

 

 

 

*** 창녀들의 아이를 맡아 키우는 로자아줌마, 모하메드(모모), 롤라아줌마, 하밀 할아버지.

대략 이런 인물들이 나온다. 자기 앞의 생이 버거운 사람들의 얘기다.

로자아줌마나 롤라 아줌마, 모모의 엄마. 그녀들은 하나같이 창녀다.

정신이상자인 아빠는 엄마를 죽었고 아빠는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었고..

그래도 로자 아줌마는 모모에게 부모님의 험담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위탁금이 끊긴지가 옛날인데도 모모를 잘 거둬준다.

 

로자아줌마는 병이 들고 더 이상 사람들은 로자에게 아이를 맡기러 오지도 않고

있던 아이들도 어디론가 다 떠나고 오로지 모모만이 로자 아줌마 곁에서 지낸다. 

끝내는 숨을 거둔 로자 아줌마의 몸에서 진동하는 냄새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된다.

 

학교교육도 받지 않은 모모는 아줌마에게서 하밀할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인생을 배우고

한 알의 달걀에서 그 주인여자에게서 인생을 터득하였다.

끝간데 없이 슬픈 얘기가 내 맘을 건드린다. 열네살 모모보다 못한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