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나침반테스 2006. 10. 3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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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언젠가 자신도 눈이 멀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늘 시달리던

페르시아의 세밀화가들 사이에서는 한 때 동 틀 무렵 서쪽 지평선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이 관습이었다.

또 한 세기 뒤에 시라즈에서는 대부분의 세밀화가들이 매일 아침 공복에 호두와 함께 으깬 장미를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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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머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신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데 일생을 바친 화가들에게 신께서 주시는

마지막 행복이다. 왜냐하면 그림이란 신이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찾아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그지없이 아름다운 광경은 그것을 그려내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화가가 결국

눈이 먼 다음에야 기억되고 완성된다는 것이다.

즉 신이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장님 화가들의 기억 속에서만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화가는 그 경이의 순간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실명의 어둠 속에서 신의 광경이 드러날 때

그 아름다운 그림을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도록 평생 동안 손을 연습하는 것이다.

 

                              2006 노벨상 수상작, 오르한 파묵 < 내 이름은 빨강 > 에서

 

 

** 그림을 그리느라 일생을 바치고 자신의 눈을 바치는  세밀화가들의 얘기.

한 때 지은이도 세밀화를 그린 적이 있다고 한다.

세밀화가들의 사랑, 욕망, 갈등, 고뇌... 가 그려진 작품.

신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 그러다 눈멈이 와도 달갑게 받아들이는 세밀화가들.

 

보통의 소설에서 "나"는 한 사람으로 표현되고 1인칭 시점의 소설이라 한다.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나"가 여럿이다.

"나"는 사람도 되고 사물도 되고, 죽은 자가 말을 하고 사후세계가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되고...

독자들은 정독을 해야 한다. 처음엔 헷갈릴 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1,2권의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능수능란하게 직조하였다. 

 

작년엔 희곡작가에게 상이 돌아가 읽는 재미가 덜 했다.

그 전엔 엘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 였던가. 그 때도 별 재미를 못 봤다.

올해의 수상작은 매력적이다. 마구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