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나침반테스 2006. 9. 14. 16:01

 

 

 스스로 죽음을 택했으나 죽지 못한 유정과 자신의 죄값을 치르려 사형을 언도받은 윤수의

만남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애초에 난 공지영에 대해서 그리 매력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전에 읽은 <봉순이 언니>에서 조금 실망을 했는지도...

 

유정에겐 세상을 또한 남자를 사랑으로 대할 줄 몰랐던 아픈 과거가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형수 윤수를 만나면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삶과 죽음이

별 뚜렷한 경계가 없다는 걸 알아간다.

 

어떤 사람도 행복의 나라나 불행의 나라 국경선 안쪽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모두들 얼마간 행복하고 모두들 얼마간 불행했다. 아니 이 말은 틀렸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

이렇게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P218에서

 

.........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정말 몰랐다고 말한 큰오빠는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할 것이다.

                                                                               *   P248에서

 

 

 

사촌에게 성폭행 당한 걸 모르는 오빠는 동생을 진정 몰랐다.

동생의 행동이 왜 그런지 정말 몰랐다.

수치로 생각하고 덮어버린 엄마 때문에 몰랐고

유정이 엄마를 왜 미워하는지 몰랐다.

거기엔 사랑부재의 아픔만이 있었다.

 

 

 

 

 

 

 

........  하지만 이제 한 가지는 안다. 그래도 산다는 것, 죽을 거 같지만.

죽을 거 같다, 이건 사는 게 아니야, 라고 되뇌는 것도 삶이라는 것을.

마치 더워 죽겠고 배고파 죽겠다는 것이 삶이듯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삶이듯이,

그것도 산 자에게만 허용되는 것, 그러므로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바꾸어서 말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  P303에서

 

 

 

 

윤수를 만나고 다니며 종내엔 그의 형집행을 겪고 난 뒤 유정의 생각은 이렇게

변하게 되었다. 좀은 빛나 보이게... 긍정적으로...희망적으로...

사랑의 발견이 너무 늦었지만.

윤수 또한 사랑을 알고 죽어갔지만.

 

유정의 가치관이 달라지듯이 나 또한 소설을 손에서 놓으며 작가에 대한 이때껏의 견해가

많이 달라져 있음을 실감했다.

오래간 만에 한 인간의 죽음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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