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세계는 열 명 내외다. 장석주

나침반테스 2006. 5. 4. 23:44
"남자가 일생 동안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여자는 세 사람밖에 없다.
그보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지. 그러니까 만일 네가 앞으로 여러 여자를 만나고
사귄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잘못 고르기라도 하면 그건 모두 쓸데없는 일이
되어버리지. 그 점을 똑똑히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 '도쿄기담집'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다면 내겐 아직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은 셈이다.
나는 너무 일찍 희망을 포기했다. 일생을 다 살아버린 뒤에야
그것을 깨닫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세계는 열 명 내외다."

박명욱의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의 작가 머릿말 끝줄이다.
십여년 전에 박가서장에서 나왔다가 절판된 책을 그린비에서 다시 펴냈다.
문장이 아름답고 편집이 개성적이어서 십여년 전에 사서 읽은 책을 다시 샀다.
그리고 심상하게 넘겨버린 그 머릿말의 끝줄을 다시 읽었다.
세계는 열 명 내외다. 맞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종횡무진한다. 헛된 수고다. 점심 먹고 수첩을 꺼내와
전화번호와 함께 적힌 이름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간다.
10명이 남을 때까지.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름을 지우는 일은 덧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누군가의 열명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열명 안에 들어가기 위해
지켜야 할 첫번째 계명은 '약속은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이다.
크든 작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첫번째로 이름이 지워진다.
<장석주의 카페에서 퍼온 글입니다.>

 

 

그대들도 한 번 해 보실려우?

수첩을 꺼내 들고 지워나가기, 몇 명이 남을 지?

누군가가 수첩을 꺼내들고 지워나가기를 한다고 해 봅시다.

내 이름이 남을까?

여기쯤 와선 초라해지는 자신을 만날 거다.

그렇지 않다면 이때껏 참으로 잘 살았다 말 할 수 있으리..

 

난 누군가의 열 명 안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부터 없애버리고 싶다.

남겨질 자신이 없다면 그 이유를 스스로는 훤히 꿰고 있을 터.

그렇다면 앞으로 살아갈 날은 그렇게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만 

자신들 앞에 놓여있다.

 

좀 무거운 얘기가 되어버렸다.

늘 달콤한 얘기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뼈 아픈 자성의 시간을 갖자는 마음 하나 만으로도  벌써 남들보단

우월한 한 걸음을 때어놓은 거라 여긴다.

 

 

 

 

 

 

하루끼의 얘기로 거슬러 올라가

여자들이 일생동안 만나는 진정한 의미의 세 사람은?

난 진정한 한 사람을 가졌다가 잃었다.

잃었어도 세 사람의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혈육을 배제한 카운트라고 할 순 없겠다.

그대들 생각은 어떠신지?

 

 

나를 낳아 기르신 아버지, 아들이 있다면 의당히 포함되겠지만

그렇질 못하다.

아니,혈육이 아닌가?

진정한 의미의 세 사람, 진정한 의미? 어려운 말이다.

그대들의 의견이 듣고 싶다.

 

 

진정한 의미의 사람.

숫자에 얽매일 하등의 이유를 못 찾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사람>이 되는 것

여기에 키포인트가 있다.

그러노라면 세 사람에도 열 명에도 포함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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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의 사진은 이철수의 판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