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나침반테스 2006. 4. 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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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일곱이란 알아야 할 것은 다 알아버린 나이.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니까. 자연은 사람을 배신하는 일이 없으므로, 다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위안을 구할 뿐. 조금 시적이고 몽상적이지만.... 하지만 시도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단순한 생리적 분비 현상으로 연구되리라.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제압하고 있다.오직 바다 만을 친구로 삼고, 페루 해변의 모래 언덕 위에 있는 카페의 주인이 되는 데에도 설명이 있을 수 있다. 바다란 영생의 이미지, 궁극적인 위안과 내세의 약속이 아니던가? 조금 시적이긴 하지만...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야 할 터.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누군가는 마흔 일곱의 나이를 청년이라 했던가?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은 삶의 끝자락에 와 있다고 느끼며 죽고싶단 만만찮은 욕구를 지니고 살지. 사육제의 마지막 물결이 이 사나이의 해변에 밀려오고...뒤이어 자신의 생을 바다에 던져 넣으려던 한 여자를 구해주게 되고. 여자를 안으며 잠깐 동안 성공한 삶이라 느끼는 작은 희망을 낚기도 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남편이 나타나고 여자와 그들은 다 가버리고... 맨 마지막 문장, <카페는 비어 있었다> 이걸 독자들의 몫으로 들이밀고 소설은 끝나지. 자살로 볼 여지를 많이 내포하고 있어. 난 자살로 이해했지. 소설을 해석할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판단에 갇히게 되는 건가?

바다 멀리 조분석으로 이루어진 섬에서 새들은 여기 해변에 날아와 생을 마감하는 부분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 얘긴 마흔 일곱이란 나이 속에 가려진 채 얘기를 안 했을 뿐.

주인공 사나이와 여자와 새의 운명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야 할 테지만...

 

이 글 속의 사나이는 마흔일곱을 이렇게 말했다.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소설 전체를 보지 않고 자꾸만 마흔 일곱에 매여있는 까닭을 그대들은 궁구해 봤나? 여자가 겪는 마흔일곱, 남자가 겪는 마흔 일곱, 마흔 일곱을 이미 건넌 사람, 지금 마흔 일곱인 사람, 곧 마흔 일곱이 될 사람.

그대들은 마흔 일곱은 정말 소설 속의 주인공같이 아무 기대도 없었단 말인가? 물론 사람마다 다르리라. 이 기회에 한 번쯤 마흔일곱을 되새겨 보자는 뜻에서...

내 마흔 일곱은 이랬지. 다가올 마흔 일곱은 어떨까? 주인공 사나이같이 세상의 끝자락을 바라보고나 있는지? 그렇다면 그대들의 생을 한 번 추스리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마흔 일곱에 생을 체념하면 너무 이르다고 생각지 않는가? 작은 희망을 잠시나마 보여준 여자라도 나타나길 기다려 보든지.

난 누구의 마흔 일곱을 지키는 여자가 되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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