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촐라체, 박범신

나침반테스 2008. 3. 23. 16:14

 

  

 

 

Cholatse,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서남서 17Km지점에 위치한 6440m의 봉우리.

 

 

 

클라이머 하영교, 박상민의 등정소설로

작가인 "나"는 베이스캠프지기이며 이 소설의 화자이다.

 

P 11 쪽의 작가의 말,

천지간에 홀로 있다고 느낄 때, 세상이 사막처럼 생각될 때,

그리하여 살아 견디는 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실존의 빙벽 아래로 투신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면 바로 소설 <촐라체>의 주인공인 상민과 영교를 기억해 주기 바란다. 

 

이 부분을 읽고서 이 소설이 구미에 확 당겼다.

책으로 나오기 전에 Naver에서 조회수 100만을 넘기며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소설이었다고...

 

 

 

 

 

영교와 상민은 아버지가 다른 형제, 이들 부모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뒤이고

의지할 곳 없는 형제애는 극한상황을 맛보는 빙벽등정에서 더욱 확고히 빛난다.

 

촐라체 북벽, 그것도 더구나 겨울산행, 빙벽에서 이틀을

비박(bivouac, 등산 시 악천후나 사고가 발생하여 계획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불가피하게 하는 야영)

하며 산정에 섰지만 촐라체를 정복한 환희는 아주 짧게 찰라와 같이 묘사하고 만다.

 

환호는 조금도 없다. 정상에 오르면 누가 말했던 것처럼

'정상은 모든 길이 시작되는 곳이고 모든 선이 모여드는 곳'이므로

엔돌핀이 분출하는 듯 기쁠 줄 알았는데, 기쁘기는 커녕 오히려 허망하고 슬픈 느낌이다.

정상엔 허공 뿐이다. 겨우 이것을 보러, 목숨을 걸고 올라왔단 말인가.

더구나 눈바람 때문에 세계는 화이트아웃, 사라지고 없다.

눈 내린 평범한 민둥산 꼭대기 한 켠에 있는 것 같다.   < P117 >

 

 

그도 그럴 수 밖에, 하강 길은 역시 순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강길에서 이 소설은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영교 크레바스에 빠지고, 천신만고 끝에 기어 올라오다가 자신의 피켈은 회수하지 못했고

도리어 앉아서 열반하듯이 죽은 어느 등반가의 피켈을 살짝 빌려오고..

그 피켈엔 한글로 '사랑해'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이미 영교의 한쪽 발목은 골절이 되었고 상민도 갈비뼈가 금이 간 듯한 통증...

캠프지기는 나름대로 그들을 구조하려고 구조대를 만들려 동분서주...

다친 자신때문에 형의 하강길이 늦어질 것이 염려되어 형 몰래 자리를 피해주고

형은 혼령에라도 이끌리듯이 크레바스에 빠져 앉아 죽은  한국인을 보려고 거꾸로 산을 오르고..

 

6일 째 되는 날, 영교와 상민은 너덜너덜한 넝마조각 같은 몸으로 만나고.

야크를 키우는 원주민들의 창고에 몸을 피하는 한편 자신들의 존재를 멀리에 알리려고

다른 창고에 불을 지르고, 마침 캠프지기의 눈에 불난 모습이 잡히고..

헬기로 구조되었지만 종내엔 손가락과 발가락에 걸린 동상으로 거의 모든

손가락, 발가락 한 마디씩을 절단할 수 밖에 없었다는 ...

 

 

실제로 촐라체를 등반한 박정헌, 최강식 두 사람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빙벽 곳곳에 도사린 위험을 건너야 하는 위기돌파는 형제애가 빚어낸 결과이며

그들을 통하여 우리는 일상의 어두운 틈새를 벗어나는 밝은 빛을 보았다 할 수 있다.

 

 

 * 참고로 지금은 Naver 에서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이 연재되고 있다.

 

 

'책장 넘기는 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가사키 파파, 구효서  (0) 2008.03.30
속죄, 이언 매큐언  (0) 2008.03.26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0) 2008.03.19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0) 2008.03.13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0) 2008.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