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뉘우침.
그러기에 명쾌할 수 없는 용서.
자매가 한 남자를 사랑한 삼각관계라고 표현하기엔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단지 죄라면 동생 브리오니의 명석하게 뛰어난 감수성.
60년에 걸친 속죄의 날들.
그 날들을 실명소설화한 이야기.
이제 연로한 여류소설가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싶어진다.
1935년 더운 여름날 런던 교외의 저택 탈리스가(家)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막내딸 브리오니.
나이 차이가 많은 오빠 레온과 언니 세실리아.
편두통에 시달리는 엄마, 공무에 바빠 귀가가 뜸한 아버지.
여러 명의 가정부, 그 중에 터너부인에겐 의대지망생 아들 로비가 있다.
워낙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라 탈리스가에서 학비지원을 하고 있다.
도시로 나가 있던 오빠가 친구를 데려오고
이종사촌으로 쌍둥이와 브리오니에겐 언니뻘 되는 롤라가 오고..
그 날 저녁 식사 후 쌍둥이들이 엄마를 찾아 집으로 간다는 쪽지만 놓고 사라졌다.
쌍둥이를 찾으려고 모든 사람들이 저택의 정원과 주변 농경지로 다 흩어졌다.
브리오니도 쌍둥이를 찾으려고 호수 쪽으로 가다가
롤라가 성폭행 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피해자를 제외한 유일한 목격자인 브리오니의 증언이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날 낮 동안의 세실리아 언니와 로비의 관계를 예의 주시한 브리오니의
거짓증언으로 로비는 성욕과다증이란 판결에 이르른다.
위의 얘기는 단지 제 1부에 지나지 않는다.
의대생이 될 목전에서 진로가 꺾인 로비가 겪는 전쟁터의 얘기가 2부.
제 3부는 자신의 증언을 뒤늦게 속죄하는 브리오니의 자발적인 시련기(자원한 간호사).
1935년으로부터 6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이 지닌 재능을 발휘한 소설가 브리오니는
자신의 지나온 세월을 속죄하는 실명소설을 쓴다.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 그곳은 다름 아닌 지금은 호텔로 변한 예전의 탈리스가.
연로한 사촌들, 그의 자녀들...그러나 언니내외(세실리아와 로비)는 참석하지 않았고.
롤라의 폭행범은 다름 아닌 오빠의 친구 폴이었고 나중 둘은 결혼하게 되었고, 역시 불참.
실명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에게 소송 당하게 될 것이 염려스러워 아직 소설은 세간에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브리오니의 독백같은 부분을 읽으며 그녀의 지난 날을
이젠 용서해 주고 싶다. 아주 간절히...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 P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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