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낮잠, 박민규

나침반테스 2008. 2. 4. 17:58

 

 

올해의 이상문학상은 권여선에게로 돌아갔다.

"사랑을 믿다"

실연을 겪은 두 남녀가 만나 이야기하는 과정을 그리는데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가 라는 요지를 너무

꼭꼭 숨기고 있어서 그들의 사랑을 믿을 수 없듯이 이 작품은 수상작이 될 수 밖에 없어,

정말 잘 쓰여졌어 하고 무릎을 칠 정도로 수작이라 느껴지지 않았는데....

책의 말미에 있는 박민규의 "낮잠"은 이때껏의 박민규 작품답지 않게 인생이 농익은 늙으막의

얘기를 너무도 능청스럽게 잘 그려냈다.

내게 이상문학상 심사가 주어진다면 박민규에게 기꺼이 한 표를 던졌을 것이다.

 

 

 

 

 

 

오늘 낮에 시아버님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올해 85세, 내 아버지였어도 그만큼 사셨고 막중한 병세로 인하여 고통이 심하다면

이제쯤 가셔도 별로 아깝지 않을 세월을 사셨다 할 만하다.

나는, 먼길 보내기 아까운 나이의 남편을 먼저 보낸 사람이야,

시아버지의 병세에 담담해도 감히 내게 뭐라 할 사람 없지,

이런 배짱이 맘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명절 앞이라 길은 엄청 붐볐다. 자동차들 사이로 택배 뛰는 오토바이는 왜 그리도 많이 달리는지

그러면서도 머릿 속으론 어제 읽은 박민규의 소설이 자꾸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生, 老, 病, 死

우리 인간이 지니는 네 가지의 고통.

누군들 거기서 자유로우랴?

나도 늙어가고 있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늙어갈 지 참으로 의문스럽고 궁금하기 짝이 없다.

미래를 보는 안경이 있다면 그걸 바라보며 하나하나 차곡차곡 정리하고 싶다.

 

자, 다시 박민규의 소설,

자궁암으로 아내를 먼저 보내고 주변을 정리한 나는 요양원에 입원했다.

거기서 중증의 치매를 앓고 있는 첫사랑을 만난다.

나의 첫사랑은 빚을 진 아들이 병원 보증금까지 탐을 내는 상황이다.

보증금의 명의를 내 앞으로 돌리고 다달이 내는 요양비를 내면 적어도 병원에서 쫓겨나지는 않을 판,

그 방법을 택하려고 나는 나의 첫사랑과 혼인신고를 한다.

봄날, 내 첫사랑의 손을 잡고 살풋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