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퀴즈쇼, 김영하

나침반테스 2007. 11. 25. 19:20

 

 

 

 

이 시대의 백수, 새로운 빈민계급으로 전락한 주인공 이민수.

우선 그의 항변부터 들어보자.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전자제품도

레고블럭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없이도 헐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 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 중에서 단 하나만 잘 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데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또 백수 이야기야?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백수일 수 밖에 없는 민수의 정황을 이해하고

그의 앞 날에 행운이 함께 하길 비는 마음에서 우리의 주인공 민수에 대한 연민을 가지며 재기발랄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소설은 상당히 재미있다.

 

사생아로 태어나 외할머니와 살았으나 외할머니가 죽게되며 내겐 빚만 남았다.

번듯한 집이 하나 남았지만 빚으로 탕감하고 거리로 내 쫓긴다. 천여 권이 넘는 책을 헌 책방에

판 돈으로 겨우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고시원뿐이었다.

창없는 고시원에서 사이버의 창으로 세상과 통한다. 인터넷 퀴즈방에 매일 접속하며 지적 동지같은 

'벽 속의 요정'(서지원)을 사귀게 되고 실제로 만난다.

 

택시가 어둠 속에 완전히 묻힐 때까지 나는 거리에 서 있었다. 나는 토끼처럼 깡충거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린 어느 카페에선 위시본 애시의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타리프가 애절하게 울어대면서 인간에게는 타인의 도움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문이 열린 그 카페를 향해 소리치고 싶었다. 모르시는 말씀, 인간에게는 친구가 아니라

연인이 필요하다구!       < P 173 >

 

그녀를 만난 날 이처럼 절규하는 나는 외로움과 그녀를 만난 열락이 혼재된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지만 나는 데이트비용이 없어 고시원 옆방녀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는데 옆방녀는 자살하고

갚을 돈도 없었지만 갚을 길이 없어진 나는 노트북을 팔아서 그녀의 영안실 앞까지만 갈 뿐.

고시원 방세 낼 길도 막막한 나는 TV퀴즈 프로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알게 된 이춘성을 찾아간다.

 

이춘성과 계약한 곳은 퀴즈대회에 출연하는 회사라고나 할까?

경마에서 기수가 있듯이 퀴즈대회가 열리고 퀴즈대회 선수들이 있고 사람들은 돈을 걸고 대회의  

승자는 배당을 받고.... 함께 합숙하며 공부하고 퀴즈대회에 출전하고... 그런 회사였다.

그 회사에서 번 돈이나마 도난 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내쫓기게 되었다.

 

서지원의 도움을 받으며 도시로 돌아오며 하는 말...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거긴 정말 이상한 곳이었는데, 처음에만 그랬을 뿐, 적응하고 나니 하나도 다른 게 없었어. < P426 >

 

내 책을 사주었던 헌책방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책방 한 귀퉁이에 놓인 야전침대는 나의 하루를 휴식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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