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검은 책, 오르한 파묵

나침반테스 2007. 7. 7. 18:45

 

 

 

 

 

 

그리 밝지 않은 가로등이지만 눈이 내린 위에 또 눈이 내려

밤풍경은 온통 하얗다.

 

늦은 밤, 나는 페라 팔레스 호텔을 나와

니샨타쉬 광장 쪽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돌무쉬(마을버스)는 이미 끊어졌고

포아차(야쿠르트나 치즈가 들어간 빵)와 살렙(음료수 종류)을

 파는 가게는 아직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어쩌면 광장까지 가기도 전에

베이올루 거리의 나이트 클럽으로 들어갈 지도 모른다.

 

 

 

내가 겨울에 이스탄불을 여행한다면

기행문의 서두를 이렇게 쓰지 않을까...ㅎㅎ

"검은 책"을 읽으며 거기서 이스탄불을 미리 공부했기에

지명, 음식이름을 들먹이며 가본 듯이 써보는 것이다.

 

 

 

 

 

 

오르한 파묵.

작년도 노벨문학상(내 이름은 빨강)을 수상한 작가님이다.

웃는 모습이 개구장이같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치곤 좀 젊은 편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56세이니까.

겉보기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변호사 갈립의 동갑내기 아내 뤼야가 어느날 갑자기 집을 나갔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의 경과를 쓴 소설이다.

갈립보다 20살 정도 많은 사촌형 제랄은 <밀리에트>지에 칼럼을 쓰는 작가이다.

공교롭게도 뤼야의 행방불명과 제랄의 잠적이 일치한다.

갈립은 뤼야와 제랄이 같이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갈립과 뤼야는 근친간의 결혼이다. 제랄과 뤼야는 이복남매지간이다.

 

 

소설은 뤼야를 찾아 이스탄불 곳곳을 뒤지는 갈립의 행적과 제랄의 칼럼이 한 챕터씩

엇갈려 구성되어 있다.

300쪽이 넘는 책이 두 권으로 이뤄진 그리 만만치 않은 분량으로 썩 재미롭지도 않으며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국의 풍물을 접하는 즐거움이 있다.

아래의 사진은 갈립이 헤매고 다녔을 베데스텐(골동품), 사하프라드(고서점),

사모바르(차 끓이는 주전자), 나르길레지(물담배가게)가 있을 만하지 않은가?

 

 

 

 

바늘로 우물을 파듯이 글을 쓰는 작가의 각고의 노력을 생각하면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내겐 흥미진진했고 이스탄불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1980년대무렵의 터어키의 정세, 역사, 당시의 대중문화, 이스탄불의 거리 구석진 곳, 음식,

냄새, 소리 색깔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소설이다.

 

 

자,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뤼야는 왜 집을 나갔을까? 거기에 대한 해답이 자못 궁금했지만 아래 인용하는 구절을

읽을 때 다소 이해가 되기도 했다.

 

1권,   P 87

빨래, 설거지, 추리소설, 가게에 다녀오는 것말고(의사는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지만

그녀는 일을 하는 데도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오늘 뭘 했는지,

특정한 순간에 뭘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런 질문 후에 생겨날 그들 사이의 심연이 두려웠다.

그것은 너무나 거대할 것이며 그가 알고자 하는 것은 그들 공통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서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뤼야의 팔을 잡고는 한순간 멍하게, 아주 공허하게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면 뤼야는 "또 공허하게 바라보는구나" 라고 말하곤 했다.

 

갈립이 뤼야와 제랄이 같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데에는 살아오는 동안 그들 부부에게 제랄이

정신적으로 스승같은 존재였던 점에서도 그 확신은 빗나가지 않는다.

그가 쓰는 칼럼은 터어키의 국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모두 그 칼럼을 읽는 재미로

새 날을 연다고 할 정도로 신문이 배달되는 아침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한 편으론

그를 저주하는 부류도 있게 마련이었다.

마약밀매업자, 쿠테타조직원, 종파나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 들은 그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다.

제랄이 주검으로 그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 위에 열거한 부류 들의 저격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뤼야도 같이 있었다. 다섯 발의 총알은 세 발은 제랄을 맞추고 한 발은 뤼야를 맞췄는데 뤼야는

총을 맞은 뒤 알라딘의 가게로 걸어들어가 그 곳에서 최후를 맞은 걸로 유추..

 

그렇다면 뤼야와 제랄이 함께 있게 된 이유라거나 우울한 단서는 무엇으로 말해야 할까?

만약 책을 읽게 된다면 2권 제 16장, "왕자이야기"를 주목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 되는 데 있다.

우리는 얼마나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가? 진정으로 자기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기억, 나를 치장하고 있는 의복등의 물건, 다른 사람과의 관계, 관계로 인한 암투,

그런 기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때에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건 아닐까?

 

 

 

 < 이스탄불의 밤거리 풍경>

 

 

2권  p314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이 이야기들을 하나의 검은 책에 모두 담는

꿈을 꾸는 나는 다른 모험을, 다른 사랑을 생각할 것이다. 기억의 정원을 걸으며, 문과 문을 지나며,

이스탄불 거리에서 길을 잃어 버리자 다른 사람이 된 어떤 연인의 이야기나 자신의 얼굴에

삶의 의미와 신비가 새겨져 있다고 믿은 남자의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래된, 아주 오래된, 아주아주 오래된 이야기들을 다시 쓰는 것일 뿐인 나의 새로운 일에 더욱더

열성적으로 몰두하여 검은 책의 마지막 장면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