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네가 뒤뜰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될 거야. 맞출 수만 있다면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모디 아줌마에게 물어보았다.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
아줌마가 말씀하셨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 1961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이다. 1962년엔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상,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상을 받은 작품이다.
하퍼 리의 이 작품은 그의 처녀작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미국 사회가 가진 차별과 관용을 다루고 있다.
나치의 잔혹상, 동족상잔, 일제의 폭정, 인종차별 등 몇 가지가 주제로 다뤄진 소설에 대해선 읽기도
전부터 마음이 무거워 읽기를 꺼렸다. 이번에도 앵무새 죽이기는 벼르다 벼르다 읽게 되었다.
읽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좁게는 나의 성장소설로 볼 수도 있다. 주인공 소녀, 내 이름은 스카웃.
스카웃의 아버지는 흑인(톰 로빈슨)의 무죄변론을 하게 된다. 아래 인용한 부분을 읽으면
사건 전체가 이해된다.
"...........
그녀는 무서운 가난과 무지의 희생자이지만 저는 그녀를 동정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백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녀의 욕망이 그녀가 깨뜨리고 있는 규범보다
더 강하여 그것을 깨뜨리기를 고집한 겁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의 증거를 말살시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죄의 증거란 무엇일까요?
톰 로빈슨. 한 인간입니다. 그녀는 톰 로빈슨을 자신으로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그녀는 한 흑인을 유혹했던 겁니다. 그녀는 백인이었고, 한 흑인을 유혹했습니다.
그녀는 우리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한 겁니다.
............ "
**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백인여자는 강간 당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욕정을 숨겨야만 했다. 사회규범상...
결국 배심원들은 유죄를 인정하고 톰은 다시 감옥에 갇힌다.
상고가 진행되는 중에 톰은 탈옥을 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총살당한다.
뒤를 이어 나와 나의 오빠는 백인여자의 아버지(이웰)에게 폭행을 당한다.
단지 아버지가 변호사란 이유만으로...
나와 오빠가 폭행당하던 날 밤은 칠흑같은 어둠이었다.
피습을 당한 오빠는 팔이 골절되고 나는 무사했다 . 도리어 이웰은 자신의 칼에 찔려 죽었다.
500쪽이 넘는 분량의 작품이다. 간략하게 쓰느라 스카웃의 이웃 부 래들리와의 관계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말하고 싶은 건 자신의 입장에서 남을 볼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다.
인종차별과 흑백갈등을 다룬 소설은 이것 이상은 없지싶다.
내가 아버지를 통하여 타인에 대한 진정한 배려와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며 성숙해가듯
독자들도 타인에 대한 진정한 배려를 알게되는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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