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나침반테스 2007. 1. 11. 12:26

 

 

 

 

 

"나 이사할까 봐."- 다케오의 말 - 로 시작해서 '이사할까 봐" - 리카의 말 - 로 끝나는 소설.

 

다케오는 8년간 동거해온 리카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한다. 다른 여자가 생겼다.

다케오는 이사 가고 비싼 방세 부담을 덜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며 거의 밀고 들어오다시피

한 하나코. 바로 다케오가 새로 좋아하게 된 여자다.

전의 사랑 리카와 지금의 사랑 하나코와 동거가 시작된다.

 

다케오는 하나코를 만나기 전 리카에게 늘 보고한다.

하나코도 다케오를 만나기 전 리카에게 보고한다. 

때론 다케오가 하나코를 만나러 리카의 집에 오기도 한다.

리카도 처음엔 어리둥절 했으나 하나코가 점점 가족처럼 편안해졌다.

 

하나코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너무 많다.

고교동창 카츠야부부는 하나코 때문에 이혼에 이른다.

리카가 재직하고 있는 학원의 부자(父子)가정의 집에 하나코는 며칠간 지내다 오기도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이 하나코를 좋아한다.

가냘프고 작고 병약한 하나코의 외모가 보호본능을 유발시키기 때문인지..

그러나 하나코는 어떤 누구에게도 맘을 두지 않는다.

 

다케오를 떠나보낸 지 1년 반이 거의 되어갈 무렵에야 리카는 다케오에게서 자유로워진다.

"나, 다케오하고 두 번 다시 안 만날 수도 있고, 다케오하고 새롭게 연애를 할 수도 있고,

지금 당장 다케오와 같이 잘 수도 있어."  < P197 >

 

 

그 뒤로 얼마 되지 않아 벗꽃이 만개한 찬란한 계절에 하나코는 친척의 별장에서 손목절개로 자살한다.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 세상의 모든 집착을 떨어버린 연기같은 존재 >가 하나코이다.

소설 말미의 리카의 말 "이사할까 봐"를 어떻게 해석할 지는 독자의 몫이다.

현실적으로 계산해서 혼자 살기엔 넓은 집이니까 이사한다, 다케오의 집으로 옮긴다,

하나코의 흔적이 남은 집에서 살기 싫다, 또 어떤 이유가 이사에 합당할까?

 

 

 

 

 

** 맘 쓰여지는 부분

 

P195   텅 빈 방으로 돌아오자 다다미 방 구석에 절반으로 자른 파가 컵에 꽂혀 있었다.

          하나코가 꽂은 것이리라. 서글픈 아름다움이었다.

 

P101   나는 변함없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오차즈케(녹차에 밥을 말아 먹는 것- 역주)

         만 열심히 먹고 있다. 가을은 일년 중에 오차즈케가 가장 맛있는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P107   "사가미 호수에서 섹스했어. 보트에서. 다케오씨 그 말을 했어?"

          심장이 툭 내려앉고, 칼에 찔린 물고기처럼 퍼덕퍼덕 떠는 것을 느낀다.

          하나코는 태연한 표정이다.

          "다케오씨 굉장히 곤란해 하더라 위험하다면서."

 

P119   어째서 사람은 어둠 속에 있으면 냄새에 민감해질까. 냄새에도, 정적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