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나침반테스 2008. 4. 4. 18:24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번역한 제목보다 원제목을 써놓으니 내용에 훨씬 더 근접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참 유명한 희곡인데,

이때껏 읽지 않았고 연극으로 올려진 것의 관객이 되어본 적도 없다.

그냥 짐작으로만 상당히 낭만적인 내용이 아닐까?

그렇게 짐작하게 하는 데는 '여로'라는 말때문이었다고 한다면...

여로라는 말에는 여행이라는 의미가 포함되니까 낭만으로 해석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희곡 속으로 들어가 보자.

 

 

 

 

 

미국 최고의 극작가 유진오닐의 자서전적인 희곡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아버지는 유랑극단의 삼류배우로서 여기저기를 떠돌다보니 그의 아내는 호텔에서 아기를

낳을 수 밖에 없었다. 첫째 아이는 잘 자라주었지만 둘째 아이가 홍역으로 죽자 아내는 마약중독자가

되었다. 아내의 중독증세가 호전되어 요양소에서 집(임시거처인 여름별장)으로 돌아오고,

셋째로 태어난 에드먼드는 폐결핵 진단을 받는 날이었고, 아버지와 형 제이미는 거의 하루종일

술에 절어 있는 어느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기침을 하면서도 술을 입에서 떼지 못하는 에드먼드의 고백같은 이야기는 이 극의 갈등이

여실히 드러난다.

 

 

 

전 안개 속에 있고 싶었어요. 정원을 반만 내려가도 이 집은 보이지 않죠. 여기에 집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거죠. 이 동네 다른 집들도요. 지척을 구분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도 만나지 않았죠.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들렸어요. 그대로인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바로 제가 원했던 거였죠.

진실은 진실이 아니고 인생은 스스로에게 숨을 수 있는, 그런 다른 세상에 저 홀로 있는 거죠.

저 항구 너머 해변을 따라 길이 이어지는 곳에서는 땅 위에 있는 느낌조차도 없어졌어요. 안개와 바다가

마치 하나인 것 같았죠. 그래서 바다 밑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오래 전에 익사한 것처럼. 전 안개의

일부가 된 유령이고 안개는 바다의 유령인 것처럼. 유령 속의 유령이 되어 있으니 끝내주게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 P 159 160 >

 

 

 

아직 마약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과거 속에 갇혀 사는 어머니,

곧 결핵치료 요양소로 가야 할 에드먼드,

유랑극단을 떠돌다보니 변변한 집 하나 마련 못한 아버지,

여자와 술에 절어서 지내는 제이미,

 

밤이 깊어가지만 뭐 하나 해결이 되지 않았고

그들은 편안한 잠자리에 들지도 못하고 극은 끝나고 만다.

아마도 관객들은 에드먼드처럼 안개 속을 허우적거리며

그들에게 연민만 가득안고 자리를 일어설 것이다.

 

 

 

* 유진오닐은 1953년 11월 27일 예순다섯의 나이로

보스턴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는데,

"빌어먹을 호텔 방에서 태어나 호텔 방에서 죽는군"이라 탄식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