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나침반테스 2007. 10. 14. 10:54

 

 

 

참으로 오랫 만에 맘에 드는 책을 만났다.

그러면서도 책을 읽는 동안 엷은 열등감이 나를 따라다녔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난 너무도 안이하게 살았다.

고민없이 그냥 하루하루의 안녕을 달가와하며..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은

1990년대 초의 학생운동이 배경이다.

그렇다고 하여 학생운동을 재조명하는 소설은 아니다.

 

우선 소설 제목은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에서 가져왔다.

책의 서두에 그 시가 소개되어 있다.

 

 

 

 

 

 

소설은 나와 정민의 연애로 시작된다.

같은 학생운동을 하는 동지애의 발로로 시작된 사랑이라기 보다는

서로의 독특한 성정과정과 경험에 매력을 느끼는 고뇌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제아무리 견고하다해도 현실은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감각이 바뀌면서 현실이 무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마련인데 이를 두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 이라고 불렀다.

...................

 

그러므로 그 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최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 P 42 >

 

 

 

나는 학생단체의 간부로 지내다 방북학생 예비대표로 베를린에 잠행한다.

거기서 강시우란 인물을 만나고

나중 강시우는 그의 애인과 방북하게 된다.

 

그 와중에 내가 그들의 방북을 도운 사람으로 둔갑하게 되어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그 곳에 머무르게 된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러하지만 소설이 장편이다시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본학병으로 징집되어 남양군도에가지 다녀온 나의 할아버지,

바다를 메우려는 포부를 가졌다가 간첩단으로 휘말리게 된다.

 

정민의 삼촌, 1960년대의 모범생이 서울의 어느 시상식에 참석하러 왔다가

길을 잃고 수류탄 투척범인으로 몰리게 되고 나중 자살하기에 이른다.

 

내가 베를린에서 만난 강시우,

잡역부 출신으로 시를 좀 쓴다하여 광주의 랭보로 격상되다가

안기부 프락치로, 모 대학의 법대생으로 베를린까지 오게 되었고

나중 애인 레이와 방북한다.

 

많은 인물들이 별개로 보이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하나로 얽히고 설켜 있는 구도를 지니는 소설이다.

탄탄하고 꼼꼼한 구성을 지닌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김연수 소설 답지 않게 성적인 묘사가 여러군데 보이는 것은

아래에 인용하는 이유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991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대뇌의 언어로 말하던 사람들이

1992년부터는 모두 성기의 언어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1991년 5월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내면 풍경이었다.

                                  < P 49 >

 

내가 베를린에 머무르는 동안 정민이 두 번 나를 찾아왔다.

정민이 오지도 않는 세월이었다면 나는 어찌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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