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리진 , 신경숙

나침반테스 2007. 6. 13. 23:17

 

 

주변에 읽을 만한 책이 없을 때 그랬다.
신경숙씨는 도데체 뭐하고 있는 거야? 소설 안 나온 지가 언젠데...
소설다운 소설에, 내 입에 맞는 소설에 굶주리고 있었다.
드디어 나왔다.
그것도 두 권으로.... " 리진 "

 

 

 

 

궁중무희가 조선말기에 프랑스 공사의 아내가 되었던 이야기.
실화를 소설로 엮어낸 역사소설이다,.
역사소설이지만 무겁지 않고 가뿐하다. 단숨에 읽힌다.
푸젼역사소설이라 해야 하나? 뉴에이지 역사소설이라해야 하나?

 

 

다른 출판사에서 김탁환의 " 리심" 이란 제목으로도 나왔다고 한다.
그건 읽어보지 않았다. 두 가지를 읽고서 비교독후감을 쓰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지만...
사설이 길다. 이제 신나게 소설 얘기를 해보자.

 

 

 

 

 

서양문물이 밀려드는 과정에서 우리 궁중의 암투와 왕비시해사건과 맞물려 있는 소설이다.
어릴 적에 천애고아가 되어 어린 나이로 궁에 들어가 왕비의 사랑을 받고 아름답고 총명한 궁중무희로
자라나 프랑스 외교관의 아내가 되는 리진이라는 인물.

또한 고아이며 실어증에 걸려 있는 궁중 악사 강연.
리진이 프랑스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리진을 흠모하는 홍종우.
홍종우라는 인물은 나중 김옥균을 암살하고 홍문관 교리가 된다.

 

 

프랑스 초대 공사 콜랭은 임금께 첫 문안을 드리러 가는 길에 리진을 이미 눈여겨 보아두게 된다.
리진은 프랑스에서 파견된 블랑주교에게서  프랑스 말을 배운 적이 있다.
콜랭에게 리진은 조선의 궁중에서 '봉주르' 하는 인삿말에 '봉주르' 하고

인사를 되받은 사람으로 각인된다.

 

 

궁녀는 왕의 여자다.
왕의 여자는 사사로운 결혼을 할 수 없다.
더구나 왕비의 사랑을 받고 자란 어린 궁녀 리진은 왕비에겐 딸같은 존재다.
왕비는 리진을 왕의 시선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던 차에 프랑스 공사관에 머무르게 했다.

콜랭에게는 기회가 왔다.

 

 

                                                                                                궁중무희들의 모습

 


프랑스로 돌아가  살게된다. 리진의 지독한 향수는 몽유병으로 돌출된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다. 콜랭은 모로코로 발령 받아 떠나고 리진은 따라가지 않는다.

당연히 강연은 리진 주변을 맴돌게 되고 강연과 리진이 가까와지는 걸 볼 수 없어하던 홍종우는

결국 강연을 숨겨버린다.

 

 

- 제 손가락이 잘리는 게 나았습니다. 그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시질 않습니까? 말을 못하는 이에게
대금을 불 수도 없게 하다니요. 그가 무슨 죄가 있어 그런 형벌을 받아야 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너와의 인연이 죄다.    p286

 

리진은 머리를 자르고 남장을 하고 강연을 찾아 다녔다. 헛수고였다.

왕비를 만나러 궁에 들었던 어느 날 밤이 늦도록 왕비의 전갈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주변이 소란해 지며 리진에게 빨리 궁을 떠나란 말을 전한다. 

 

 

 

 

칼을 찬 무사들이 궁에 난입했고....

왕비를 끝까지 뒤따르던 서상궁의 등에 칼이 꽂혔다. 그 칼이 다시 장안당 뜰에 넘어진 왕비의

가슴에 서슴없이 내리꽂히는 순간, 움직임이 멈춰버린 리진의 검은 눈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P282

 

왕비의 죽음이 풍문으로 떠도는 동안 리진은 궁의 약방에서 구한 비상을 반촌 방 안의 드레스를

죄다 껴입은 채 사전의 누런 종이 사이사이에 발라 놓았다.

오한이 그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뺨이 발그레한 채 익히던 프랑스어 단어들 사이에 이제 그녀의

숨을 멎게 할 독이 숨어 있다.

-  이 길밖에는 없습니다.

사전의 누런 종이를 한 장 한 장 찢어 씹어먹고 있는 리진의 입술이 잠깐 비틀리는 듯했으나

곧 담담해졌다. 미소를 짓고 있는 듯도 보였다.   P298

 

특이한 이력을 가진 궁녀의 얘기로 시작했으나 왕비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지니고 있는

압도적인 힘이 리진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리진의 존재로 왕비의 죽음이 새로운 의미로 부각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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