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짧고 강하다.
댓구법, 대조법, 연쇄법이 난무하지만 질서정연한 수사법이다.
문장은 정갈하며 역사적인 사건과는 상반되게 소설은 문장으로 빛난다.
우리가 소풍삼아 다니는 곳이 이런 역사적 치욕을 담고 있다니...
땅덩어리로 말하는 중국이란 곳이 우리에게 어떤 곳인지 다시 돌이켜보게 한다.
황제의 나라라고 섬기며 살았던 과거.
아무리 좋게 끌어다 붙여도 치욕이란 말 외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인조가 군졸을 다스리던 수어장대>
병자호란의 와중에 치욕이 어느때보다 처절한 때를 잡아 썼다.
1636, 12, 14(인조 14년) 부터 다음해 1, 30까지 47일간의 이야기이다.
인조는 청의 무리에 쫓겨 남한산성에 피신하였다.
산성은 밖과 단절된 곳이고 밖의 물자를 들일 수도 없는 곳이다.
그 안에서 다 해결해야 하는 지형이다.
임금과 민초들은 한 마디로 곤궁 자체였다.
더구나 겨울이었다. 자연에 기댈 수도 없는 환경이었다.
임금의 처소라 하여 다를 바 없었다. 난방과 수라는 형편없었다.
성 안에서 인조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삼전도에서 청의 칸에게 예를 갖추고 투항한다.
이로 인하여 명의 연호를 버리고 청의 연호를 쓰게 된다.
굴욕적인 장면을 인용해 본다.
청의 사령이 목청을 빼어 길게 소리쳤다.
- 일 배요!
조선 왕이 구층 단 위를 향해 절했다. 세자가 왕을 따랐다.
조선 기녀들이 풍악을 울리고 춤추었다. 기녀들의 소맷자락과 치마폭이 바람에 나부꼈다.
풍악소리가 강바람에 실려 멀리 퍼졌다. 홍이포가 터지고 청의 군장들이 여진말로 함성을 질렀다.
조선 왕은 오랫동안 이마를 땅에 대고 있었다. 조선 왕은 먼 지심 속 흙냄새를 빨아들였다.
볕에 익은 흙은 향기로웠다. 흙냄새 속에서 살아가야 할 아득한 날들이 흔들렸다.
조선 왕은 이마로 땅을 찧었다.
청의 사령이 다시 소리쳤다.
- 이 배요!
조선 왕이 다시 절을 올렸다. 기녀들이 손을 잡고 펼치고 좁히며 원무를 추었다.
풍악이 지진모리로 바뀌었다. 춤추는 기녀들의 동작이 빨라졌다. 속곳이 펄럭이고 머리채가 흔들렸다.
다시 홍이포가 터지고 함성이 일었다. 조선 왕이 삼 배를 마쳤다.
칸이 조선 왕을 가까이 불렀다.
< P355 >
*** 예스24에서 작가 김훈과 함께 남한산성 답사를 계획한다고 한다.
5월 29일과 6월 2일, 두 번에 걸쳐서.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가신청하는 것도 뜻깊은 일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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