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넘기는 소리

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나침반테스 2008. 5. 1. 20:44

 

 

 

 삶은 죽음 앞에 주어진 짧은 휴가였다.

 

비와 안개에 싸인 알바니아 북부 고원지대에서 벌어지는

인간 실존의 비극적 서사시.

 

매년 가을이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으로

발표 당시엔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1978년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엔 소개된 지 십여 년정도.

 

작가는 알바니아 태생(1936)이지만 1990년에 독재정권의 탄압을 못 견뎌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조르그는 추위와 안개에 휩싸여 형의 피를 회수(복수)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는 하마트면 웃을 뻔 했다. 사람을 죽이기 전에는 살 권리가 없다니! 오직 사람을 죽인 연후에야,

그리하여 이번에는 그 자신이 죽음의 위협을 받을 때에라야 그의 삶이 이어질 거라니!

                                                         < P 41 >

 

고원지대 산악인들에게 전해져오는 피의 법칙은 모든 승패에 복수가 뒤따른다는 점.

상대 집안에선 그조르그에게 한 달의 휴가를 선포했다.

한 달이 지나면 그조르그 또한 죽임을 피하여 도망 다녀야 한다.

 

그 기간에 산악지대엔 한 신혼부부가 여행을 왔다.

베시안(신랑)과 디안(신부).

 

그녀에게서 뗄 줄 몰랐던 그의 눈이 말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낯선 여인이여, 나는 이곳에 단지 얼마간만 살다 갈 겁니다!'

남자의 눈길이 그처럼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던 적은 결코 없었다.

죽음이 근접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던 청년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 속에 불러일으킨 동정심  때문이었을까?      < P179 >

 

스쳐가는 듯한 순간, 거의 몇 초의 시간에 가슴에 남는 사람.

 

베시안은 아내의 빈 껍데기만 가져가고, 진짜 그녀는 산중 어딘가에 놓아두고 가는 느낌이었다.

                                                                                     < P 325 >

 

베시안 부부가 여행의 출발점이었던 도시로 돌아오는 그 시간,

그조르그의 뺨엔 차가운 총신이 느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