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때로 잔인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나도 사랑해야 할까?
그건 아니다.
잔인한 사랑의 속성이다.
1920년대, 강한 여성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시하던 때이다.
그렇건만 우리의 주인공 키티의 외도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혼기를 놓칠까 두려운 나머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한 것이 화근이었다.
세균학자인 남편, 월터를 따라 홍콩에 이주하여 살게된다.
파티에서 총독부 차관보의 관직을 지닌 찰스 타운센드를 알게 된다.
두 남녀는 짧은 시간에 극도로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걸 눈치챈 남편은 용의주도하게 메이탄푸로 가기를 자청했다.
메이탄푸는 콜레라가 만연한 지역으로
굳이 월터가 가지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메이탄푸로 가기 전 키티는 타운센드를 만나
본부인과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해줄 뜻을 내비쳤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메이탄푸로 가서 콜레라게 감염되어 죽게 된다면
그 죽음이 타운센드에게 복수하는 길이란 모진 마음을 먹고 메이탄푸로 떠난다.
시간이 흐르며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과 타운센드에 대한 미움이
메이탄푸의 광활한 대자연 앞에서 무력해짐을 느꼈다.
아주 천천히 흘로가는 강물의 모습에서 사물의 무상함과 애수가 밀려왔다.
모든 것이 흘러갔지만 그것들이 지나간 흔적은 어디에 남아 있단 말인가?
키티는 모든 인류가 저 강물의 물방울들 처럼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서로에게 너무나 가까우면서도 여전히 머나먼 타인처럼, 이름없는 강줄기를 이루어
그렇게 계속 흘러흘러 바다로 가는구나.
모든 것이 덧없고 아무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 사소한 문제에 터무니없이 집착하고
그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인간이 너무나 딱했다.
< P205 >
그러던 중 월터가 콜레라에 감염되어 죽게 된다.
그의 죽음은 실험중 감염된 것으로 알려지며 거의 자살에 가까운 죽음이란 생각에
키티는 많이 번민한다.
홍콩으로 돌아와 타운센드 부인의 간곡한 부탁으로 그들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고,
다시 한 번 더 타운센드가 키티에게 육체적인 접촉을 시도하게 된다.
그것이 오히려 런던으로 빨리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돌아오는 배안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전보로 받게 되는 불행을 겪는다.
런던으로 돌아와서는 바하마로 부임하게 된 홀몸인 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존재에 애정을 못 느끼고 살았던 지난 날을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키티를 너무도 사랑했으면서 사랑의 표현에 서툴렀던 월터,
사랑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타운센드,
가족을 위하여 부양의 책임만 다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일생을 살아온 아버지,
메이탄푸의 수녀원에서 키티를 감화시킨 수녀원원장,
메이탄푸의 광활한 대지를 산책하며 키티에게 친절을 베푼 워딩턴,
책을 덮으며 그동안 정들었던 얼굴들을 떠올려본다.